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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연재상자/어떤 존재들

어떤 존재들 2 - 오렌지노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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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들 2


 제갈량이라는 이름으로 또 하나의 삶이 끝났다. 언제든 죽는 경험은 상당히 고통스럽고 불쾌하다. 이제 정말 죽음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무리 경험해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죽음의 고통이 끝나면 오랫동안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산모의 뱃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제한적이었기에, 이 때는 직전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렇게 나는 죽음을 새로운 탄생으로 바꿔치기 해왔다. 
 
 아주 오랫동안 굉장히 많은 삶을 살아보았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은 엄청나다. 다만 이 새로운 몸으로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산모의 뱃속에 있는 동안 그 모든 기억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뇌에 새겨놓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수천년간 경험해온 일들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만 기억해내어 회상하곤 한다. 그러면 태어나서도 그 기억들을 간직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뱃속의 기간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선 시간순으로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기로 한다. 맨 처음 무언가를 인지한 그 순간, 그 때를 떠올려본다.

 나란 존재에 대한 자각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저 뭔가 불편한 느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눈이 부셨던 느낌이었을 것이다.  빛을 느끼게 된 것이다. 시신경을 자극한 그 태양빛은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갑자기 큰 소리가 스쳐간다. 거대한 공룡이 그르르 소리를 내며 지나갔는데 공포라는 게 뭔지도 몰랐던 그 때는 그냥 뭔가 큰 덩어리가 지나갔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주위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내 몸에 뭔가가 느껴진 것을 알아챘다. 분명 어떻게 하니까 내가 볼 수 있는 시야가 달라졌었는데 다시 그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다는 것이 뭔지 알리가 없었으니까.



 내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어느정도 익숙해진 뒤 이것 저것 새로운 동작을 해보기 시작했다. 어떤 것들이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는데 똑바로 서는 것 조차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배고픔에 대처하는 법, 잠을 자는 것,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법 등을 알게 되었다. 본능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 모든 과정들을 겪는 것이 너무나도 더뎠다. 나와 비슷한 종족을 발견했을 땐 같이 살게 되었고, 내 몸과 조금 다르게 생긴 인간과 장난을 치다가 섹스라는 행위를 너무나도 우연히 발견하였고, 그 행위가 좋았던 나머지 즐겨하게 되었다. 그 것이 종족번식의 방법일 줄이야.

 첫 죽음은 나무열매를 따먹다가 공룡에 밟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느껴보는 극심한 고통 후에 편안함이 되었다. 하지만 보던 것을 보지 못하고, 듣던 것은 굉장히 이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후 탄생이라는 고통을 겪에 되었다. 울음이 터져나왔고 강한 자극에 몸을 떨었다. 한참 후 알게되었다. 그 곳은 내가 직전 삶에서 겪었던 곳이라는 것을. 우스운 것은 나와 섹스를 하던 그녀가 나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너무나도 작아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예전처럼 뛰어다니고 싶었으나 기껏 힘들게 터득한 것이 기는 방법이었다. 힘들게 두 다리로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걸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맹수에게 물러 몸이 찟겨지는 끔찍한 경험을 하고 두 번째 죽음을 맛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죽고 다시 태어나면서 더 오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그것은 몸이 기억하여 본능이 되었고, 특히 내 자손들은 본능에 따라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 살아갔다. 그 때는 누구나 나처럼 다시 태어나는줄만 알았지만,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특별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꼭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나와 같은 존재를 만난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탈레스라는 이름으로 살던 중, 내가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그 사람이 먼저 물어왔던 것이다. 굉장히 자유분방한 느낌이 들었던 그녀는 다음 생이 기다려진다며 벼랑에 떨어져 죽었다. 그녀는 다음 생에서 혹시 만난다면 자신과 살아보지 않겠냐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발견할 수는 없었다. 갈수록 이렇게 전생얘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을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바로 직전의 삶이었던 제갈량으로써의 삶을 평가해본다. 인류에 남긴 메시지로는, 뛰어난 사람이 정한 규칙은 지켜가는 것이 다수가 잘 사는 방법이라는 것과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전투를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 등이었다. 특히 적벽대전 때 남동풍이 필요할 땐, 남동풍이 잠시 부는 그 시기 즈음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 바람을 만든 척 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통쾌한 일이다. 오직 강유에게만 이 비밀을 말해주었는데, 그가 얼마나 이러한 방법을 전술에 잘 사용할지는 미지수이다. 사마의라는 사내도 나와 같은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알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번 삶은 어느 지역의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게 될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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