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어디에도 있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인간이 존재한다.

약속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인간, 그리고 이런 개념을 깡그리 무시하는, 지금 날 화나게 하는 이 친구놈.


오랜만의 소개팅 자리라며 백화점에서 자기 옷을 고르는 걸 도와달라던 친구녀석은 늦게 일어났다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로 나를 이 백화점에서 40분이나 기다려달라고 한다. 무례한 인간도 친구로 부르는 것이 맞는지 잠시 고민해본다. 이내 차분이 생각해보며, 지금 화를 내어봤자 내 정신건강에 이득이 될 것은 없고, 친구가 나타났을 때 다시 감정을 끌어올려 화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냉철하게 해본다. 그리고 되찾은 이성으로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해야할지를 고민해본다.


도착층을 누르지 못한 엘레베이터는 꼭대기층에 이르렀고, 나처럼 여유가 있어보이는 한 아저씨를 따라 내렸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아저씨였다.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시계를 한 번 쳐다보더니 뒤따르는 나를 의식했는지 한 번 바라보고는 천천히 걸어간다. 나는 아저씨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을 여유로운 표정으로 있는 힘껏 발산하고 전화를 받는 척을 한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뭐지? 이 곳은 백화점의 분위기가 아니다. 정신을 빼놓는 진열대도 보이지 않고, 그저 고급스러운 복도만 눈에 들어온다. 끝까지 걸어가니 백화점에서 시간이 남는 사람들이 교양 있는 척을 할 수 있는 용도로 보이는 갤러리가 보인다. 시계를 보니 친구놈이 오려면 35분이 남았다. 이 곳에서 35분동안 있을 자신은 없지만 일단 들어가본다. 


생각보다 넓지 않은 갤러리를 들어서자마자 한 그림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서 강한 시선이 느껴짐과 동시에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지금 이 그림 10분째 보고 계신 것 알고 계세요?"

"네? 제...가요?"

"네. 이렇게 그림 앞에서 무엇에 홀린 듯 쳐다보는 분은 처음 봤어요."


잠깐 보고있었다고 생각했는데, 10분이 지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나에게 왜 말을 걸었을까? 하긴 지금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올 정신이 아니다. 요 며칠간 계속 내 꿈 속에 나왔던 배경이 그림이 되어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짙은 밤 속에, 수많은 달들이 나를 쳐다보듯 떠다니는 풍경, 하지만 그 달들이 무섭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고 포근했던 그 기분들. 그런데 이 배경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나에게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인데, 몇개월 전부터 계속 꿈에 나왔던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한 남자가 그 꿈에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믿지 못할까봐 걱정하며 조심스레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허나 지금은 내게 어떤 이상한 일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믿어요. 전부."


나도 모르게 촉촉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내 손을 확 끌어당겼다!


"헉!"


정신을 차려보니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기분 좋은 온기가 남아있었다. 무심코 벽을 바라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그 곳에서 나에게 이야기하듯,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렌지노 단편소설 '달은 어디에도 있었다.' 2014.02.18


motiv :




그림 - 'Flash the light-1' 조현지 작가 作




  1. 진진 2014.02.19 09:51 신고

    이야기가 이~~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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