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거짓 7


유비군의 회의실이다.

"형님! 서서가 돌아왔습니다!"
"무어라? 원직이!"

장비와 유비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송구하옵니다. 주공..."
"이렇게 돌아와주다니, 어머님문제는 어찌되었소?"

유비가 묻자 서서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이 와중에 내 사정까지 걱정해주다니... 내가 진정 있을곳은 이곳이다...'
서서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가 이리로 돌아와야 어머니께서 사실 수 있습니다. 저를 다시 거두어 주십쇼..."

울먹이는 서서를 보고 유비는 황망히 서서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날 도와주신다면야 이 비 바랄게 없겠소이다."

서서와 유비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유비가 지노를 발견했다.

"그런데 옆의 선비는 누구시오?"
"이 분은 내 어머니의 은인이십니다."
"형님, 이자는 형님이 채모를 피해 단계를 건넌 다음날 본 사람이 아닙니까?"

의외로 기억력이 좋은 장비가 먼저 지노를 알아보았다. 유비가 지노를 천천히 보더니 기억을 더듬었다.

"높으신 이름이 분명 지...붕? 아니 지....갑? 음...아닌데 지....조... 아 지조선생이시로군요!"
"......지노라고 하옵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절 도와주시겠습니까?"
"거두어만 주신다면 개나 말의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장비가 갑자기 옆구리에 찬 칼을 잡으며 지노를 노려본다. 지노는 정색이 되어 몸을 떤다.

"왜...왜그러십니까..."
"정녕 개나 말의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으시겠소?"

여전히 똑바로 노려보며 호통을 친다. 옆에서 유비가 말리려 하나 장비가 지노를 해칠거라고 생각하진 않는지 머뭇거리고 있다.

"그...그렇소이다...."
"에잇!"

장비가 칼을 뽑았다. 모두가 놀라 장비를 쳐다본다.

"하압!"

장비가 기합을 내지르고는 칼을 멀리 던진다.

"물어와!"
"예...예?"

지노가 여전히 땀을 흘리며 물어본다.

"개의 수고로움이 이런것이오 가서 물어오시오."

여기까지 보고있던 유비가 옆에서 장비의 뒷통수를 세게 때린다.

"네 어찌 이리 구느냐!"

"왜때려요!"

장비는 울먹이며 처소로 돌아간다. 유비는 다시 호통친다.

"칼가져가!"

장비는 자신이 던진 칼을 주워서 처소로 뛰어갔다. 지노는 다시한번 가슴을 쓸며 심호흡을 한다.

"아우가 무례했소. 용서하시고 이럴게 아니라 술자리를 마련할테니 못한얘기나 나눕시다."

칼을 들고 뛰던 장비가 갑자기 돌아본다.

"나도 갈테요!"
"저게 술이라면 그저 좋아서... 알았다. 오늘은 기쁜날이니 봐주겠다. 가서 관리들과 장수들을 부르고 자리를 마련하게 하라."

장비가 싱글대며 돌아간다. 유비가 다시 서서와 지노를 보며 말한다.

"자 그럼 듭시다 서서선생, 지조선생."
"......지노라고 하옵니다."


이윽고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서서는 지노와의 만남을 이야기했으며, 유비도 지노와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유비는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두 분을 얻었으니 천하통일과 한조재흥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여이다!"

서서가 별로 기뻐하는 내색 없이 덧붙였다.

"아직 만족하시면 안됩니다."
"그건 또 무슨소리요? 원직. 아직 만족하면 안되다니..."

옆에서 지노가 서서를 거들었다.

"맞는말이옵니다. 어찌 용과 봉황을 얻지 않으시고 만족하려 하십니까?"

유비는 곰곰히 지노의 말을 되씹었다. 용과 봉황이라... 유비는 번뜩 수경선생의 '와룡봉추'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공명선생부터 찾아뵈야 되겠구려... 근데 서서, 지노 두 분으로도 천하통일이 가능하지 않겠소?"

서서가 말했다.

"아닙니다. 공명은 저에 비할바가 아닙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관중과 악의는 그의 머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그를 얻으셔야 합니다."

지노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공명선생을 반드시 모셔오셔야 합니다. 물론 그럴일은 없겠지만 조조에게 가버리면 천하는 조조의 것이 됩니다. 또한 그의 형인 제갈근이 손권의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로 가기 전에 서두르셔야 합니다. 공명선생에 비하면 저는 한마리의 개와 같습니다."

함께 술자리에 참여해 거나하게 취한 장비가 지노의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고기안주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듯 던지며 소리쳤다.

"물어와!"

잠시 술자리가 조용해지더니 '퍽'하는 소리가 났다. 모두 소리가 난 쪽으로 바라보니 유비가 장비의 뒷통수를 세게 때린 것이었다. 장비는 그대로 엎어져 잠이 들었다. 유비는 지노를 바라보며 사과한다.

"이 아이의 앞에서는 개얘기를 하지 말아주시오. 대신 사과하니 노여워 마시오 지조선생..."
"......지노라고 하옵니다."

이상적인 거짓 8

술자리가 끝난 다음 날, 유비는 서서와 지노를 불렀다.

"내 오늘 공명을 찾아보려하오. 그대들이 도와주시오."

지노가 서서의 눈치를 보니 서서는 스토리대로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가라고 할 것만 같았다. 지노가 서둘러 대답했다.

"예, 그러겠습니다."

이쯤되자 서서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지노는 그저 공명이 사는 융중에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스토리대로라면 이번에 갈땐 공명은 집에 없을 것이기에 삼고초려에 빛이 덜해질거라는 우려는 하지 않았다. 유비가 대충 예물을 준비하고 있는데 누군가 범상치 않은 용모를 가진 누군가가 오고있었다.

"수경선생 아니십니까!"

유비는 그자리에서 예를 표하고 좋은 자리에 앉혔다.

"그간 무고하셨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선생을 보려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유비가 이렇게 말하며 지노에게 눈짓을 주었다.

"아...맞습니다. 선생을 뵈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저 예물을 보니 주인은 따로 있는 듯 하여이다 허허허. 아 그렇지, 원직은 어디있소?"

유비가 수경선생을 찾아가는게 아닌걸 들킨 듯 하여 얼굴이 붉어졌고, 서서가 다가왔다.

"이 몸 여기있습니다. 선생님."
"그래 내 오늘은 특별히 여기 유사군을 잘 뫼시라고 당부하려고 찾아왔다.

소홀함이 없도록 하여라."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그런데 그 뒤에 탱자색 관복을 입은자는 누구이더냐?"

수경선생 사마휘가 지노를 발견하고 그렇게 물었다.

"전 지노라고 하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자네는 뭐든 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구만. 그러나 곧 자네가 생각하지 않은대로 이 세계는 흘러갈거니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말게나."

지노가 다시 그 뜻을 물었으나 그냥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노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책의 내용을 최대한 참고하여 일을 꾸미다보면 언젠가 그것이 전부 어그러져 그저 머리만 써야 할 상황이 올 것이라는 말을 한 것 같았다. 가만히 듣고있던 유비가 다시 물었다.

"공명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수경선생 사마휘는 가볍게 서서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는 어찌 공명까지 끌어들이는가!"

그렇게 호통을 치더니 다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천운은 유사군에게 있나보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명은 최주평, 석광원, 맹공위, 그리고 저기있는 서서. 이렇게 어울려 다녔소. 모두가 천하의 귀재들이라 할 수 있으나 공명은 그 중에 실로 가장 뛰어나다 할 수 있소."
"제가 듣기론 공명은 관중과 악의에 자신을 비했다고 하는데 너무 과하지 않은가요?"
"허허허. 내가 생각하기론 그들이 과하오 강자아나 장자방이면 모를까."

실로 수경선생 사마휘는 대단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쯤듣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놀라며 공명을 높게 보게 되었고 더러는 믿지 못했다. 이쯤되자 사마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선생님, 잠시라도 쉬셨다가 가십시오."

그러나 사마휘는 하늘을 보고 크게 웃다가 돌아갔다. 유비, 서서, 지노는 다시 채비를 차리고 공명에게 가기 위해 떠났다. 뭇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도착한 융중이란 작은 마을은 그 위엄과 풍채가 대단했다. 이런 곳이라면 정말 숨은 은자가 있을 것 같았다. 공명의 집에 다다르자 동자 하나가 나왔다.

"어디서 오신 누구십니까?"
"한의 좌장군에 의성정후요, 예주목이자 황제의 아저씨뻘 되고 머리카락싸움 장원에 우유 빨리마시기 대회에 차석을 따냈으며, 귀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유비가 특별히 선생을 뵈러 왔다고 전하여라."

동자는 입을 벌리고 유비를 가만히 쳐다봤다. 이에 실수를 느낀 유비가 다시 말했다.

"그냥... 조금 대단한 유비가 왔다고 하여라."

그래도 동자는 유비를 쳐다보기만 했다. 유비가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했다.

"유비가 왔다고 하여라."

그제서야 동자는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지노가 유비의 표정을 살피니 마치 이성과 감정이 격렬하게 다투기라도 하듯 입 언저리가 실룩거리고 눈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내 평안을 되찾은 표정이 되어 부드럽게 물었다.

"어디로 가셨느냐?"
"모르겠습니다."

지노는 유비의 내면싸움을 다시한번 목격할 수 있었다. 서서가 옆에서 말했다.

"공명이 나가면 언제 들어올지 그 때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아니오 난 기다리겠소. 그대들이나 돌아가시오."
"한달 이상 걸릴수도 있습니다."
"뭐하시오 어서 가십시다."

그렇게 그들은 얻은거 없이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저만치서 어떤 고명한 선비로 보이는 자가 걸어오는걸 보았다. 유비는 서서에게 물었다.

"저분이 공명선생이 아니오?"

서서가 살펴보더니 말했다.

"저자는 공명이 아니고 최주평입니다."

최주평이라면 유비도 수경선생한테 들었던 이름이었다. 우선 그에게 가서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저는 유비라고 하옵니다. 선생은 혹시 공명선생이 아니신지요?"
"아닙니다. 저는 최주평이라고 하옵니다."
"이름은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와서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잠시나마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최주봉선생..."
"최주평이오!"

최주평이 화를 내며 돌아가자 유비가 다시 가서 그를 잡았다.

"잠시 실수했소 노여워 마시오. 가르침을 들을 순 없겠소?"
"알았오 그러면 잠시..."

그들은 바위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가장 말이 없었던 것은 지노였다. 지노는 가만히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곳은 매우 복잡하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이 세계의 책들을 읽어야 겠다. 병서나 사서같은것 말이다..."

유비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바라건데 저와 같이 신야로 돌아가서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최주봉...아니 최주평선생."
"이름이나 까먹는 자와는 더 할말이 없오."

최주평은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서더니 서둘러 사라졌다. 서서가 옆에서 말했다.

"저자는 예전에도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른자를 매우 폭행한 적이 있사옵니다. 저자가 제일 싫어하는게 자기 이름 까먹는 것입니다."

유비는 자신의 실수를 한탄하며 서서와 지노를 데리고 신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지노가 물었다.

"주공. 제 이름이 무어지요?"
"지노아니요. 내 다시는 이름을 안까먹으리다. 근데 그대의 자는 무엇이오?"
"橘色이라 하옵니다."
"아 그래서 탱자색 관복을 즐겨 입으시는구려. 지귤색..."


신야로 돌아가자 관우, 장비 형제가 그들을 맞았다. 장비가 그들을 보고 말했다.

"뒤에 탱자색 관복을 입은자가 공명이오? 어디서 많이 본 듯 하여이다."
"이 분은 지귤색이 아니냐. 공명선생은 못 모셔왔다. 후에 나와 같이 가자."

지노를 보자 장비가 다시 칼을 뽑아 던지려 하였고 관우가 그걸 알아채서 칼을 빼앗았다. 그러곤 장비에게 말했다.

"내가 칼을 뺏지 않았으면 넌 다시 형님께 맞았을것이다!"

그때 유비가 장비의 뒷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너 또 '물어와'할려고 했지?"


<9편에 계속>


2002/08/11 - [연필상자] - 지노의 연재소설 '이상적인 거짓' 1~2
2002/08/12 - [연필상자] - 지노의 연재소설 '이상적인 거짓' 3~4
2002/08/14 - [연필상자] - 지노의 연재소설 '이상적인 거짓'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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