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초휘는 잠자리에 누운 지 한 시간 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오히려 잠이 오질 않길 바라는 듯도 하다. 2년간의 유학생활과 그 동안 자주 연락을 해 준 준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매일 같이 만났으면서도 수도 없이 싸웠던 지난 날. 준서보다 친구들이 좋아 약속도 몇 번 깼던 일들이 갑자기 미안해져 옴을 느낀다.

몇 달 전 준서의 생일에 같이 있지 못하고 전부터 예정되었던 친구들과의 여행을 갔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 당시 화가 난 준서와 헤어졌다가 최근에 준서의 화해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자신과 준서가 얼마나 어울리는지 생각해 본다. 결국 답이 나오지 않은 채 잠이 든다.

"여보세요……."

"나야 준서, 아직 자?"

"으응…… 몇 시이지?"

"11시다. 난 점심 먹으러 왔는데 아직도 자네?"

"일어날게 잔소리꾼아."

"아니, 뭐 맘대로 해. 자려면 자고."

"오늘 너 수업 2시에 끝나나?"

"아니, 3시."

"음. 오늘 수요일이구나. 학교로 놀러갈까?"

"어? 오늘? 음……. 그래. 아니, 학교 말고 그냥 신촌으로 와. 끝나고 전화할

테니까."

"학교로 가도 상관없는데……. 뭐, 알았어. 이따 보자."

"응 안녕."

준서는 학관에서 냉면을 먹고 도서관에 잠시 들렀다가 수업에 들어갔다.

그 시간 수업이 끝난 선율이 재영과 식사를 하러 학관으로 갔다.

"오늘은 먹을 게 뭐가 있나……."

"그다지 먹을 만한 게 없네."

"그럼 스파게티나, 냉면먹자."

"난 어제 스파게티 먹었으니, 냉면으로 하자."

"그래 오늘은 친히 내가 쏘지!"

"오, 그래. 내가 커피 사마."

그들이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하려 한다. 재영은 궁금한 게 많은지 젓가락을 든 채 선율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야, 야. 걔 얘기 좀 해봐. 준서랬나?"

"네가 뭘 그리 궁금해 하냐?"

"우리학교 04학번이라며. 어느 학부야?"

"인문학부래. 국문과 갈 거래.""그래? 문과대는 거의 영문과 가려고 하지 않나?"

"글 쓰는걸 좋아해서 그렇다는데."

"여자친구도 있다며?"

"있긴 한데, 불만이 많더라고. 헤어질 거라나……."

"그런 얘길 너한테 했다고?"

"응. 좀 희한하긴 해."

"인문계열 04학번들 인물 좋던가?"

"글쎄. 그걸 어찌 알겠니."

"그건 그렇고, 내일 소개팅 알지?"

"음. 꼭 가야 되나."

"전엔 그렇게 해달라더니. 어쨌든 꼭 나와. 알았지?"

"응. 그래."

선율은 학관에서 식사를 마치고 한 시간짜리 수업을 들은 후 혼자 집으로 가게 된다. 레코드점에 이르자 어제 들었던 곡을 다시 듣고 싶은 생각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나 이미 다른 사람이 그 곡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길지 않은 머리와 평범한 스타일의 여인이었다. 선율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무안해져서 레코드점을 나왔다.

초휘는 다시 음악에 심취하려 시선을 시디로 가져간다. 그러다 방금 전 눈이 마주친 사람을 다시 바라본다. 와인 빛 블리치가 들어간 긴 생머리에 약간 튀면서도 세련된 스타일. 뭔가 따라해 보고 싶은 차림이었다. 집중이 흐트러진 탓에 음악을 더 들을 수 없어져 레코드점을 나와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갔다.

#6

수업이 끝난 준서가 두리번거리며 교문을 나선다. 그러면서 최대한 튀지 않기 위해 바글대는 무리 속에서 신호등을 건넌다. 죄인처럼 불안해하며 커피숍에 들어간다. 들어가서도 혹시나 선율이 있나 찾아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이, 늦었어."

"응. 미안 많이 기다렸어?"

"응. 빨리 마실 거 사줘"

"그래. 초휘야 뭐 마실래?"

"난 카라멜카페모카."

"응. 조금만 기다려."

잠시 후 모카 두 잔을 들고 온 준서가 쟁반을 놓고 자신의 컵만 챙긴다. 초휘는 남은 한 잔을 알아서 가져간다.

"새 학기는 어때? 할만 해?"

"뭐, 그렇지."

"강의실에서 여자들만 쳐다보는 거 아니고?"

"후후, 어떻게 알았냐?"

"괜찮아. 나도 남자들만 보면서 다니지롱."

"그래? 말은 안 걸어보고?"

"음. 말을 걸어볼까?"

언제나 그렇듯 비아냥거리는 식의 대화가 둘 사이를 오간다. 목소리도 큰 편인데다 대화 중 손짓을 자주 하는 초휘는 주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때 준서의 바지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준서는 화장실에 가서 방금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확인한다.

'준서야 뭐해? 나 집에 왔지롱. 수업 끝났을까나?'

예상대로 선율의 문자이다. 준서는 답장을 보내고 진동도 안 울리도록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어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지이잉'

선율은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을 열어본다.

'응. 잘 들어갔어? 나 수업 끝나고 친구 좀 만나고 있어. 혼자라도 재밌게 놀아~'

직감적으로 한동안 답장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선율은 메시지를 보내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소설책을 편다. 그러나 이내 덮어버리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이 든다.

준서는 초휘의 얘기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자주 바지주머니의 핸드폰을 만지며 모카를 쉴 새 없이 마신다.

"오늘따라 커피를 빨리 마시네?"

"수업 때문인지 목이 말라서."

"뭐야. 너 다 마셔도 내꺼 안줘."

"안 먹어. 안 먹어 안 먹어."

"먹지마라. 메롱. 준서야 우리 쇼핑할래? 나, 사고 싶은 가방 있는데."

"얼마 전에 샀잖아."

"더 예쁜 게 보이는 걸 어떡해."

"당장 사고 싶은 거야?"

"사주기 싫어? 전에 나 옷 사주기로 한 거 대신 이거 사주면 되잖아."

"옷? 얼마 전에 사줬잖아. 그 티셔츠 지금 네가 입고 있네."

"응? 이거? 그런가? 사주기 싫음 마라. 앗, 잠시 전화 왔다. 여보세요? 응? 아 맞다. 미안. 잠시만."

들고 있던 핸드폰을 한 손으로 막고 다시 준서에게 말한다.

"미안한데, 오늘 선약이 있는 걸 깜빡했어. 어쩌지?"

"가봐. 나도 오늘 좀 피곤하다."

"음…….준서야 미안해. 여보세요? 나 준비가 좀 늦어서 그런데 30분만 늦게 나갈게 미안. 응. 그래 미안해."

안절부절 못 할 정도로 미안해하며 전화를 끊는 초휘를 바라보는 준서의 눈이 차갑다.

"일어나자."

"삐졌냐? 가지말까?"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누가 가지 말래? 나도 들어가서 쉬려고 했어. 잘 놀다 들어가."

"……."

"먼저 간다."

"잘 가."

2005/04/21 - [연필상자] - [연재] Message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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