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어머! 저 사람들 좀 봐!"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지. 왜 길거리에서 남들 보는데 뽀뽀를 하고 난리래."

"보기 좋기만 하네 뭐. 넌 저럴 용기도 없잖아?"

"……."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엔 이젠 신경도 쓰지 않게 된 준서와 선율은 솔로나 아직 밋밋한 커플들에게 부러움을 샀다.

"너 변했다? 전엔 길거리에서 뽀뽀해달라고 해도 안 해주더니."

"그런가? 얼굴이 두꺼워졌나보네. 헤헤."

"오늘은 뭐할 거야?"

"여행 왔으니 일단 주변 구경 좀 하고 노래방 들렀다가 술이랑 안주 사들고 방으로 들어가자."

"응!"

준서의 눈물사건 이후로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이미 그들은 누구나 인정하는 공인커플이 되어있었다. 그들을 사랑을 자극시키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많은 웃음과 눈물,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괴로움은 그들의 사랑을 더 강하게 만드는 촉매가 될 뿐이었다. 만난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그들이었다. 방으로 들어가며 준서가 말한다.

"난 율이 노래 듣는 게 너무 좋아."

"아직도 그래? 1년 전에도 그랬었잖아. 히히."

"몇 십 년 후에도 그럴 것 같은데요?"

"호호. 고마워요. 나도 준서랑 있는 게 제일 좋아."

"사랑해."

잠시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갠다. 준서의 오른손이 선율을 안아 머리를 쓰다듬는다. 선율은 준서와의 첫 키스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준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볍지만 깊은 키스. 그들은 현재의 시간이 서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며 깊은 사랑을 나눈다.

선율이 준서의 품에서 잠을 깬다. 시계를 보니 늦은 아침이다. 준서를 바라보니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잠들어있다. 선율은 살짝 미소를 지은 뒤 더 준서에게 더 가까이 안겨 다시 잠을 청한다.

'지이이잉'

선율의 휴대폰이다. 번호를 확인해보니 집이다. 왠지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을 받는다. 울리는 휴대폰을 그대로 놓아두고 다시 누우려 한다.

"누군데?"

"응? 일어났어? 집인데, 안 받을래."

"우리 천사 내가 모닝키스로 깨웠어야 되는 건데……."

"벌써 일어나 있었네요. 잠꾸러기씨. 헤헤."

휴대폰의 진동은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근처 강가로 나와서 강을 바라보고 앉았다. 한 곳을 바라보는 그들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이들이었다. 선율의 고개가 준서의 어깨로 떨어진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에서 뭔가 반짝하는 것이 떨어졌다.

"울어요?"

"응? 아냐. 내가 왜 이러지. 너무 좋아서 그런가?"

준서는 말없이 선율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다시 강을 바라본다. 왠지 자신도 코끝이 시큼해지는 것을 느낀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준서가 분위기전환을 한다.

"떡볶이 만들어 먹을까?"

"응! 배고파!"

"가자."

"업어줘."

"응?"

"업어줘. 업어줘."

"알았어. 자."

"안 무겁지?"

"다 업혔어? 다 업히라니까?"

"히히. 빨리 가세요."

"응. 떡볶이 만들러 가자!"

"가자!"

#10

"이제 들어오니?"

"예. 아빠. 잘 놀다 왔어요."

"참. 선율아 너 어제 전화 안 받더라."

"휴대폰을 가방에 넣어 놓아서 몰랐어요."

"중요한 일이었는데……."

갑자기 선율에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어떤 얘기도 들어선 안 될 것 같다.

"피곤해서 들어가 자 볼게요."

"선율아. 이번 주 내로 짐 싸 놓는 게 좋을 거야."

"……."

"그러게 전화 받지 그랬니. 너에게 의사를 물어보려 했던 건데."

"어딜…가기라도 해요?"

"아빠 일 때문에 독일에 가게 됐어. 어제까지만 해도 취소할 수 있었는데 이제 취소할 수 없어."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너도 이제 졸업했으니 학교문제는 됐고, 독일에서 음악공부도 더 할 수 있으니 너에겐 좋지 않아? 2년 정도면 될 거야."

"……."

"무슨 문제 있니?"

"아니에요. 그럼 들어가 볼게요."

선율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한숨쉬기를 반복한지 벌써 한 시간이 되었다. 통화버튼을 눌렀다가 이내 정지버튼을 누르길 수차례.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 있었다.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 하는 것은 확실히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큰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준서와의 2년간 이별. 서로가 견딜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만난지 1년이 된 지금도 하루만 못 봐도 힘든 것을 2년씩이나.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통화 신호음을 듣는다. 그러나 준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갑자기 힘이 빠지며 서 있기 조차 힘들어진다.

'아프다.'

선율은 바닥을 잡고 웅크린다.

'헤어져야 한다.'

한쪽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방법이 없다. 준서에게 이 얘기를 하면 뭐라고 할까. 뭔가 다른 방법을 제시할 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발버둥일 뿐이다. 계속 만나는 채로 떨어져 지내면서 행복하긴 힘들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준서의 입대. 자신 때문에 미루고 있지만 언젠간 다녀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못 만나는 시간이 2년이 넘을 것이다. 서로가 행복해 지는 방법은 잊는 것 이외에 떠오르지 않는다.

'띠리링 띵 띵…….'

준서의 전화이다. 고민 끝에 받지 않기로 한다. 전화벨 소리가 울릴 때 마다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선율은 저린 가슴을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벌써 3일째다. 준서는 더해가는 갈증에 연신 맥주를 들이키며 핸드폰만 바라본다. 갑자기 그의 눈이 커지더니 신속히 핸드폰을 열어보고는 테이블에 던져버린다.

"이런 젠장. 누가 이런 광고메시지 기다린대?"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친다.

"야. 준서야. 혼자 뭐하냐?"

친구 지혁이다. 준서는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오직 핸드폰만 바라본다.

"사람이 왔는데 아는 척도 안하냐? 응? 너 무슨 일 있어? 안색이 안 좋은데?"

여전히 무반응이다.

"그럼 난 간다."

준서의 바람대로 지혁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지혁도 준서의 그런 성격을 알기에 이럴 땐 계속 말 걸며 다독여주기보다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휴……."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선율에게 계속 전화를 하던 그였다. 그러나 이젠 그 행동이 선율을 귀찮게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고 있던 것이다.

어느새 일주일이 되었다. 이젠 하루에 한 번만 전화를 걸어보기로 마음먹은 상태이기에 오늘도 침대에 쓰러져 있다시피 엎드린 채 신호음이 가고 있는 핸드폰을 귀에 올려놓고 받지 않을 전화를 걸고 있다. 오늘도 신호음이 꽤 오래갔다. 이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올 차례이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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