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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준서의 건조하면서도 시덥잖은 문자메시지. 언제나 대답 없는 선율이지만 준서는 그녀의 짜증내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약간 비아냥거리는 투의 준서의 마지막 편지를 들고는 우체통을 찾는다.

"나 원래 이런 놈이야. 실망해. 실망해버리라고."

주위 사람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며 중얼거리는 준서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준서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손잡이를 잡았다. 왠지 문을 열 힘이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대로 주저앉는다.

"이제 내 차례야. 내가 그녀를 미워할 차례야. 마인드컨트롤. 그래 평소에 내가 잘 하던 것이잖아."



하얀 방과 하얀 침대. 준서는 선율에게 기대어 울고 있고, 선율은 준서의 머리를 안아주며 같이 눈물을 흘린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얼굴엔 눈물자국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선율이 준서의 얼굴을 잡아 일으키며 말한다.

"이제 이렇게 같이 눈물 흘릴 수 없을 거야. 혼자 눈물을 쏟아낼 일이 많이 있겠지."

준서가 깨끗한 눈동자로 선율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준서의 눈물 자국을 손으로 지우며 다시 말한다.

"그 땐 이렇게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지만……."



'지이이잉'

준서가 눈을 번쩍 뜬다. 방금까지의 생생한 꿈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왜 이런 꿈을. 비워지지 않는 가슴의 잔을 조금씩 비우고 있었는데 왜 이런 꿈을……. 자신을 잠에서 깨운 핸드폰을 보니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너 내가 답장 안하는데 왜 계속 문자 보내? 나한테 집착 있어? 조금은 남아있던 너에 대한 연민마저 이제 없어.'

준서는 갑자기 허무해진다. 분명 원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자 몇 개와 편지 한 통으로 이렇게나 쉽게 원하는 대로 되어 버리니 왠지 실망스럽다. 우리의 10년 같던 1년이 이거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싶다. 하지만 왠지 자신은 아무리 그녀를 미워하려 노력 해봐도 되지 않음을 느낀다. 감정 장치가 고장 날 때 자신의 뛰어난 마인드컨트롤 능력도 같이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서서히 자연스럽게 잊혀져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는 정말 연락을 안 하리라 다짐한다.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들을 검색하며 그 동안 자신의 좁아진 인간관계에 회의가 밀려옴을 느끼며 소화제를 한 알 먹고 다시 잠을 청한다.

2005/04/21 - [연필상자] - [연재] Message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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