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syche에 대한 희랍적 사유와 사도 바울의 견해차를 psyche의 기능적 구조를 통해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인간의 구원에 대한 양자의 차이점을 설명하라.



인간의 본질 영혼(psyche)는 이성, 기개, 욕망으로 구분된다. 이성은 판단, 추론능력이고 기개는 감정과 의지이며 욕망은 육체적 욕구를 말한다. 희랍적 사유에서는 이성과 욕구는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영혼을 이끌어가고 기개는 욕구를 이성에 따르게 만든다. 이 복종심은 회귀본능과 정신의 우위에 있다. 이성에 의해 이들이 통제될 때 이성은 지혜의 덕, 기개는 용기의 덕, 욕구는 절제의 덕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플라톤의 삼분법을 수용했다. 그는 기개는 이성의 지배를 받는 불합리한 부분이며 욕구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불합리한 부분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실천의 덕과 이론의 덕을 강조했는데 이론의 덕을 실천의 덕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중세에 들어오면서 의지가 이성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신앙이란 이성의 활동보단 의지의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성령의 힘에 대한 신뢰는 희랍적 사유처럼 이성에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인 성량의 감화에 의해 의지가 움직인다는 것을 말한다. 사도바울은 인간의 의지가 율법을 준행할 능력이 없기에 성령만이 인간이 율법을 준행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희랍적 사유와는 달리 인간의 의지는 욕망의 지배를 받기에 율법에 대한 이성적 판단만으론 의지를 움직일 수 없으며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율법을 준행한다는 것이다.

희랍적 사유는 의지를 이성의 판단을 따르는 불합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반면에 기독교는 의지를 이성의 판단에 따르지 않는 불합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차이가 있다.





2. 아우구스티누스가 'Creatio ex nihilo'를 주장하게 된 논리적이유를 설명하고 이 주장이 갖는 철학사적 의의를 평가하라.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란 시간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다. 그 까닭은 시간이란 변하는 것인데 창조가 시간속에서 이루어졌다면 신이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되므로 완전자로서의 신의 개념과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은 영원속에 존재한다. 이 영원은 단순히 시간의 연속이 아닌 초시간적인 것이다.

신은 이 세계를 무로부터 창조하였는데 희랍철학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아무런 형상도 없는 순수질료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였다고 할 때, 절대적 형상이 없는거라면 무와 다른것이 아니며 상대적 형상이 없는거라면 신을 제약하는 것으로 무신론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신은 영원의 차원에서 이 세계를 무로부터 일순간에 창조한 것이다. 이에 생겨나는 새로운 대상은 배태이유설로 해결된다. 즉 신은 태초에 그의 무형상의 질료인 하늘과 땅을 창조할 때 그것의 규정성의 원리인 형상을 심어놓음으로써 어떤 것은 현실태로 어떤 것은 가능태의 상태로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데카르트의 코키토 명제에서 주장한 신존재 증명이나, 라이프니츠의 변신론 등 신에 관한 논변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3.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은 자유로우며 죄를 지을 가능성이 없는 인간을 창조 할 수 있다."는 맥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도 신은 아담과 같은 인간을 창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설명하고 이를 반박하라.



악의 딜레마의 극복 방안은 세가지가 있다. 첫째, 완전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 둘째, 악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 셋째, 신의 존재와 악의 존재를 양립 가능한 것으로 화해시키는 것이다. 아구구스티누스는 세번째 방안을 택해서 악의 딜레마를 벗어나려 했다. 그가 말하길 악은 도덕적 악과 자연적 악이 있으며 도덕적 악은 인간의 죄이며 자연적 악은 그로 인한 벌이다. 그에게 있어서 악의 존재는 신의 정의가 실행되도록 허용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그의 전선성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결국 신의 전선성을 위해 인간의 죄의 잠재력을 지닐 것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신의 선성은 바로 인간의 죄를 심판하고 그를 구원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에겐 문제가 있다. 양립론의 입장으로는 아담의 원죄는 여전히 인과적인 면에서 원인이 신에게 있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자유의지 논변에 따라 원죄의 근원을 인과적인 사슬에서 자유로운 의지에 귀속시키는 것이 신의 선성을 보다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다.





4.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에 대해 칸트는 존재란 속성이 아니기에 이 논증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칸트와 같은 맥락에서 전개된 이 우주론적 논증에 대한 케이쓰 레러 교수의 현대적 비판을 소개하라.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을 요약하면, '더욱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있지 않다면, 그 때는 더욱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보다 더욱 위대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가능하다. 더욱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보다 더욱 위대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더욱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는 틀림없이 있다. '이다 이 논변은 후건부정문으로 타당한 논변이다. 이에 칸트는 유니콘과 뿔의 명제를 존재로 치환하면 동언이나 모순이 된다며 존재는 속성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케이쓰 레러 교수는 안셀무스의 논변에서 존재를 x로 치환하면 '더욱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x가 있지 않다면, 그 때는 더욱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x보다 더욱 위대한 x가 있다는 것은 가능하다. 더욱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x보다 더욱 위대한 x가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더욱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x는 틀림없이 있다.'가 되는데 이 경우 x를 보물섬으로 치환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러나 '더욱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를 x로 치환하면, 'x가 있지 않다면, 그 때는 x보다 더욱 위대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가능하다. x보다 더욱 위대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x는 틀림없이 있다.'가 되고 이 경우에 x를 보물섬으로 치환하면 성립되지 않고 오직 신에 경우에면 건전하다.





5. 보편논쟁에서 반실재론의 입장에는 어떠한 견해들이 있는지를 설명하고 보편자에 대한 반실재론의 입장이 종교에 대해 어떤 견해를 취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라.



반실재론에는 유명론(Nominalism), 심상주의(Imagism), 개념론(Conceptualism)이 있다.

유명론에선 보편자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낱말만이 보편자로서 보편자란 존재론적인 개념이 아닌 논리적인 개념일 뿐이라고 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완전자로서의 신은 논리적인 개념이므로 존재를 함축한 완전성으로 실재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견해를 취할 수 있다.

심상주의에선 낱말은 심상을 가리키며 심상이 개체들과의 유사성에 의해 개체들에 적용된다. 이 때 심상은 특수한 개별적 심상이다. 예를 들어 삼각형이란 개념에 대해 어떤 특정한 삼각형을 머리에 그리게 되며 그것을 통해 개별적인 삼각형과 낱말을 연결시킬 수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신에 대한 심상은 비둘기나 십자가의 예수 등의 특정대상을 떠올리게 되고 이를 신이라는 낱말과 연결시키는 것일 뿐, 특정한 심상으로 존재하는 신이 실재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개념론에선 낱말은 개체들의 다양한 특성을 갖추고 있는 보편적인 심상인 개념을 가리키며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개체에 낱말을 적용한다고 한다. 신이라는 낱말은 전지전능전선한 완전자의 개념을 가리키며 이를 신에 적용시키는 것이므로 개념으로 존재하는 신이 실재한다고 할 순 없다는 견해를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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