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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정의
역사를 두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면, 사실 그대로의 일, 즉 있었던 일 자체를 말하는 것과 역사가가 직접 평가하여 기록하는 일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역사가는 역사에 대해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을 정도로 역사가가 기록한 것에 대한 해석, 더 오랜 일로는 고고학의 해석 등이 중요시된다.
그러나 나는 역사를 이렇게 정의하겠다. ‘역사란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역사를 소설이라고 한 이유는 그만큼 역사라는 것이 신빙성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역사의 발전의 개념
‘역사는 발전하는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역사의 발전에 대해서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역사, 즉 있었던 사건에 대한 기록 그 자체가 발전한다는 것을 역사의 발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역사의 발전의 기준을 그 역사가 얼마나 사실 그대로 기록되었는가에 두기로 했다.
역사가 사실 그대로 있었던 일만 기록되었다면 그야말로 역사가 발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역사는 발전해왔는지, 앞으로는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본다.
중국사의 예
그 방대한 중국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국시대를 예로 들어서 역사는 발전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보기로 한다. 삼국시대의 역사서인 진수의 삼국지 정사와 나관중의 소설인 삼국지연의를 비교하여 설명하기로 하겠다.
진수가 저술한 삼국지 정사는 말 그래도 역사서이다. 사람들이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사료라고 믿고 있는 역사서이다. 그에 반해 삼국지연의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삼국지 정사에 대해서 그대로 믿어야 할까? 제후들이 공성전으로 전투를 했는지 축구경기로 성을 빼앗았는지는 모르는 일 일 것이다. (제갈량이 만두나 화약을 만들었듯이 축구경기도 만들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자도 우리와 같은 사람에 불과하다. 주관성이 다분히 개입 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우선 너무도 유명한 적벽대전을 예로 들어보자면, 조조는 100만대군을 이끌고 적벽에서 싸웠으나, 세력이 훨씬 적었던 촉, 위 연합국에 의해 무참히 깨지고 몇백기만 이끌고 패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서 제갈량과 주유의 지략에 대해선 크게 미화되고 조조의 패전행군은 매우 처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 결과는 마치 절대 이길 수 없는 촉오연합군이 조조군을 이긴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어쩌면 조조군은 패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적벽대전에 참여한 조조의 군대는 백만명으로 알려져있고 제갈량이 손권군을 격동시기키 위해 과장 될 때는 백오십만이라고까지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 100만의 대군을 모을 수 없을 것이다. 진수의 정사에는 25만정도로 나와있고, 당대의 모사인 제갈량과 주유가 있는 것 등으로 세력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좀더 극정인 승리를 위해 크게 과장되어 조조군은 엄청난 참패를 한 것으로 연의에 쓰여져 있고 일반적으로 연의를 더 믿고 싶은게 그 묘미가 아닐까. 어쩌면 촉오연합군이 군세가 더 강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니까...
일반적으로 삼국지 정사가 보편적인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사의 지은이인 진수는 촉에서 허리가 잘리는 형을 받아서 죽은 진식의 아들이다. 그런 자가 얼마나 객관적인 저술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이라던지 정통성, 또는 승자 위주로 저술된 것이 바로 이 삼국지 정사이다.
역사는 정치적인 도구로써도 창조된다. 반고의 신화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손권이 차지한 강남은 원래 중국으로 보지 않았던 땅이었고 그 곳을 중국에 포함되기 위해서 반고의 신화가 창조되었고 널리 알려져있다. 역사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면 신화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기록되었다는 것만으로 믿을 수 없는게 역사이니만큼 신화도 믿진 않지만 역사는 역사이다.
역사의 조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왔다. 현재의 사료도 우리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 아니, 우리가 경험한 것이라도 그것이 어떠한 조작인지는 모르기에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사진이나 동영상 등도 조작이 가능한테 하물며 문헌은 어떠할까.
역사는 발전하는가?
난 역사의 발전에 대해 얼마나 사실 그대로 쓰여지는지를 기준으로 두었다. 그런데 역사는 사실 그대로 쓰여져 오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지 않다. 특정 집단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역사는 왜곡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미래는 나아질까? 미래에도 역사는 사람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객관화는 될 수 없다. 결국 역사는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를 두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면, 사실 그대로의 일, 즉 있었던 일 자체를 말하는 것과 역사가가 직접 평가하여 기록하는 일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역사가는 역사에 대해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을 정도로 역사가가 기록한 것에 대한 해석, 더 오랜 일로는 고고학의 해석 등이 중요시된다.
그러나 나는 역사를 이렇게 정의하겠다. ‘역사란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역사를 소설이라고 한 이유는 그만큼 역사라는 것이 신빙성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역사의 발전의 개념
‘역사는 발전하는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역사의 발전에 대해서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역사, 즉 있었던 사건에 대한 기록 그 자체가 발전한다는 것을 역사의 발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역사의 발전의 기준을 그 역사가 얼마나 사실 그대로 기록되었는가에 두기로 했다.
역사가 사실 그대로 있었던 일만 기록되었다면 그야말로 역사가 발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역사는 발전해왔는지, 앞으로는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본다.
중국사의 예
그 방대한 중국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국시대를 예로 들어서 역사는 발전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보기로 한다. 삼국시대의 역사서인 진수의 삼국지 정사와 나관중의 소설인 삼국지연의를 비교하여 설명하기로 하겠다.
진수가 저술한 삼국지 정사는 말 그래도 역사서이다. 사람들이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사료라고 믿고 있는 역사서이다. 그에 반해 삼국지연의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삼국지 정사에 대해서 그대로 믿어야 할까? 제후들이 공성전으로 전투를 했는지 축구경기로 성을 빼앗았는지는 모르는 일 일 것이다. (제갈량이 만두나 화약을 만들었듯이 축구경기도 만들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자도 우리와 같은 사람에 불과하다. 주관성이 다분히 개입 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우선 너무도 유명한 적벽대전을 예로 들어보자면, 조조는 100만대군을 이끌고 적벽에서 싸웠으나, 세력이 훨씬 적었던 촉, 위 연합국에 의해 무참히 깨지고 몇백기만 이끌고 패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서 제갈량과 주유의 지략에 대해선 크게 미화되고 조조의 패전행군은 매우 처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 결과는 마치 절대 이길 수 없는 촉오연합군이 조조군을 이긴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어쩌면 조조군은 패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적벽대전에 참여한 조조의 군대는 백만명으로 알려져있고 제갈량이 손권군을 격동시기키 위해 과장 될 때는 백오십만이라고까지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 100만의 대군을 모을 수 없을 것이다. 진수의 정사에는 25만정도로 나와있고, 당대의 모사인 제갈량과 주유가 있는 것 등으로 세력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좀더 극정인 승리를 위해 크게 과장되어 조조군은 엄청난 참패를 한 것으로 연의에 쓰여져 있고 일반적으로 연의를 더 믿고 싶은게 그 묘미가 아닐까. 어쩌면 촉오연합군이 군세가 더 강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니까...
일반적으로 삼국지 정사가 보편적인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사의 지은이인 진수는 촉에서 허리가 잘리는 형을 받아서 죽은 진식의 아들이다. 그런 자가 얼마나 객관적인 저술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이라던지 정통성, 또는 승자 위주로 저술된 것이 바로 이 삼국지 정사이다.
역사는 정치적인 도구로써도 창조된다. 반고의 신화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손권이 차지한 강남은 원래 중국으로 보지 않았던 땅이었고 그 곳을 중국에 포함되기 위해서 반고의 신화가 창조되었고 널리 알려져있다. 역사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면 신화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기록되었다는 것만으로 믿을 수 없는게 역사이니만큼 신화도 믿진 않지만 역사는 역사이다.
역사의 조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왔다. 현재의 사료도 우리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 아니, 우리가 경험한 것이라도 그것이 어떠한 조작인지는 모르기에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사진이나 동영상 등도 조작이 가능한테 하물며 문헌은 어떠할까.
역사는 발전하는가?
난 역사의 발전에 대해 얼마나 사실 그대로 쓰여지는지를 기준으로 두었다. 그런데 역사는 사실 그대로 쓰여져 오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지 않다. 특정 집단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역사는 왜곡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미래는 나아질까? 미래에도 역사는 사람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객관화는 될 수 없다. 결국 역사는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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