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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노상자/하고 싶은 말

친구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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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전, 회사때문에 지방에 내려가서 자주 보지 못하게 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 결혼한다."

친구가 이미 여자친구와 오랫동안 사귀었고, 결혼 생각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상당히 놀랐다. 내 친구가 결혼을 하다니. 그 동안 친척, 회사 동료의 결혼식은 종종 참석했지만, 정말 친한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너 결혼하면 이제 놀러가기도 힘들텐데 아직 여유 좀 있으니 한 번 어디 다녀오자."
"그래. 다녀오자."

하지만 쉽지 않은 약속이었다. 친구가 주말에 쉬지 못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결혼 준비를 하느라 따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여행은 가지 못했고, 어릴때처럼 친구네서 하룻밤이라도 자고 올 수 있었던게 다행이었다. 당시 내가 다른 친한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먹고 갔는데도 오히려 숙취해소음료를 사주었던 친구. 어느때처럼 어릴적 이야기를 하며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녀석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운동회. 남자들은 차전놀이를, 여자들은 부채춤을 췄다. 당시 음악선생님의 추천으로 각 반에서 한명씩 뽑아 군악대가 결성되었다. 내가 8반대표였고, 이녀석은 9반대표였다. 관심사가 비슷하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같은 반이 아니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공통된 관심 키워드는 제일 먼저 음악, 그 밖에도 삼국지, 게임, 개그욕심 등 비슷한 점이 많았다. 같은 반이 된 것은 단 한차례, 중학교 2학년때였다. 당시 친구는 반장이 되었고, 우리는 서로 전날 만들어 온 멜로디를 들려주며 그렇게 작곡을 시작하였다. 전문적인 음악 지식이 부족하였지만, 당시 친구가 만든 곡은 지금 생각해도 멋진 곡이 많다. 우리는 나중에 이런 비유를 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와 성장과정을 보내면서 크게 발전할 수 있는데, 이는 마치 관우와 장비가 모두 무예가 뛰어난 이유이기도 하다는 나름의 결론이었고, 우리는 제멋대로 '도원이론'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고등학교는 달랐지만, 고3때 같은 독서실을 다니며 많은 장난을 쳤었다. 당시의 재미있는 일화들은 '독서실 일기'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기도 하였지만 지금 보면 우리만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깨알같이 소소한 일화들이었던 것 같다. 결국 둘은 대학 동아리도 같았고, 같은 학교의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
내가 군대를 갔을 때, 일부러 가족 없이 이 친구와 논산훈련소에 갔었다. 당시 친구가 날 훈련소로 데려다주고 홀로 집에 가는 기차를 타면서 그 쓸쓸함을 구구절절히 내 홈페이지에 적었었고, 후에 그 글을 읽은 나는 상당한 공감을 받았었다. 지금은 그 글을 찾기가 어렵다. 또한 나를 비롯하여 군대가는 친구들을 위해 곡을 써서 줬었다. 당시에 감동을 받았던 나는, 친구가 군대를 갈 시기에 그 곡을 편곡하여 싸이월드에 출품한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찾기가 어렵다. 상당히 많은 경험을 같이했던 친구이다.


(2009년 여름, 도쿄 여행 중. 왼쪽이 친구 종훈, 오른쪽이 나)


늦잠을 자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사회 콜?' 

우리는 늘 문자를 짧게 보냈다. 귀찮아서도 있지만 대충 말해도 알아듣기 때문이 컸다. 하지만 당시에 난 잠결에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잤었고, 뭔가 이상한 기분에 일어나서 문자를 다시 보니 결혼식 사회를 봐달라는 말이었다. 결혼식 한 달도 남지 않은 때였다.

'콜'

어떤 분들은 주위에서 물어보았다. 왜 축가가 아니고 사회를 부탁받았는지. 하지만 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신랑이 나보다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땐 절대 인정하기 싫었고, 그저 막상막하인 라이벌이라고 생각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인정을 했다. 이 친구는 나보다 작곡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한다. 어쨋든 나에게 사회를 부탁한게 사실 좀 의외이긴 했다. 이미 결혼식이 임박했으니 사회자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었기에 전혀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흔쾌히 맡았다. 결혼식 사회를 본 적은 없었지만 자신은 있었다.

처음 부탁했을때도 그랬지만, 청첩장을 받기 위해 만났을 때도 친구가 나에게 부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사회 중 절대 이상한 걸 시키지 말고 점잖게 일반적으로 해달라고. 사실 둘다 장난끼가 많아서 한번 부탁해서는 절대 내가 들어주지 않을 거라고 예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난 약한 이벤트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친구의 여자친구 성격상 절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벤트는 포기하기로 했다.


2011년 10월 15일. 결혼식 당일.

비가 심각하게 쏟아졌다. 결혼식 날 비가 오면 잘 산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아, 아이폰으로 검색해보니 정말 그런 말이 있었다. 사회 멘트때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결혼식을 위해 만든 자작곡으로 축가 준비를 했고, 이 때문에 건반을 빌렸다. 결혼식 당일 신랑이 바쁘기 때문에 이 설치도 나에게 맡겼던 것이다. 다행이 내가 아는 기기인 PC88이 대여되었기에, 무난하게 테스트를 해줄 수 있었다. 예식장 직원과 사회 방법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을 듣고 주례선생님과도 대충 맞춰보았다. 시간이 되어도 식장은 어수선하였지만, 직원의 사인에 의해 결혼식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좀 떨렸지만 결혼식의 주인공이 사회자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긴장될 이유는 없었다.

 
결혼식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이렇게 나의 친한 친구는 유부남이 되었다. 나 또한 진심으로 축하하고 잘 살 것이라 믿는다. 신랑 신부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내가 가본 적 있는 곳이라 몇가지 조언을 해준 적 있다. 그 전에는 결혼이라는 것이 아직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친한 친구가 가버리니 나와도 무관한 일이 아니구나 싶다. 나도 안면이 있는 그의 과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종훈이 가서 이제 너 누구랑 놀아?"
"내가 뭐 친구가 종훈이 뿐인가?"

막상 넉살좋게 받아쳤지만 결혼한 친구, 그리고 지방에 신혼 집을 마련한 친구를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쉽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추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가끔 안부만 들어도 좋지 아니한가. 그리고 제수씨, 종훈이랑 연애할 때 제가 종훈이랑 일본 여행 다녀와서 절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집들이 가면 반겨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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