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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사랑받아야 사는 여자 - 1
'잘 도착했어요? 전 들어왔습니다.'
짧은 메시지였다. 이 남자, 상당히 건조하다. 수애는 늘 하던대로 30분을 기다려 짧게 답장한다.
'네 그럼요 ^^'
문자를 보낸 뒤, 초조하게 수정구슬을 응시한다. 빛이 환해질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차이가 없다. 다시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다행입니다. 좋은 꿈 꾸세요.'
이럴수가. 이런 남자는 처음이다. 소개팅 도중 이 남자를 사로잡기 위해 온 힘을 다 하진 않았지만 분명 실수한 것은 없었다. 이 쯤이면 긴 문자메시지로 수애를 귀찮게 하고, 수정구슬도 눈에 띄게 빛나야 했다. 손톱을 물어뜯던 수애가 15분만 기다린 뒤 답장을 보냈다.
'네 기오씨도요.'
오늘밤은 잠이 쉽게 들 것 같지 않다. 아이패드를 꺼내 늘 그랬던 것처럼 수정구슬을 촬영한다. 수정구슬을 매일 찍어둔 앨범에는 미세한 밝기 차이를 보이는 수정구슬이 한가득 담겨있다. 그녀에게는 이 수정구슬의 밝기 변화가 바이오리듬이다. 오늘 찍은 수정구슬은 어제와 거의 흡사한 밝기이지만 수애의 기분은 있는대로 가라앉았다. 소개팅과 같이 남자를 만난 날이면 눈에 띄게 밝아져야 했던 것이다.
새벽 4시. 깊게 잠이 들지 못 한 수애가 잠에서 깨었다가 시계를 보고 다시 눈을 감는다.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좋은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기오가 생각났다. 자신에게 빠지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포기할 것인가. 고민을 하던 수애는 어느 순간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수애답지 않게 늦잠을 잤다. 아무리 일요일이라도 9시 전에는 일어나 조깅을 했던 그녀이지만, 시계바늘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를 보고 놀란 수애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난 듯 핸드폰을 본다. 문자가 와있다. 기오였다.
'잘 잤어요? 꿈에 수애씨가 나왔네요. 수요일에 바빠요? 보고싶었던 연극이 있는데 같이 보러 가요.'
알고보니 긴 문자를 보낼 줄 아는 남자였다. 왜 갑자기 태도가 변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수정구슬을 바라본다. 기분탓인지 모르지만 확실히 어제보다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시각을 확인하니 10분 전에 보낸 문자였다. 늦게 일어난 티를 내기 싫어서 바로 답장하기로 한다.
'어쩌죠? 수요일엔 선약이 있는데, 다른 날은 안 되세요?'
선약같은 건 없었다.
'금요일에 괜찮아요?'
'네. 그날 뵙는거로 할게요.'
수애가 다시 침대에 눕는다. 입가에 미소가 번져있다. 아무래도 밤새 했던 고민은 어느정도 풀린 듯 하다.
시간은 빨리 흘러 금요일이 되었다. 수애는 일이 남았지만, 급한 것만 정리하고 퇴근을 했다. 기오는 전 보다 멀끔한 차림으로 수애를 반겼다. 연극이 끝나고 식사를 하러 가는 중에 수애가 말했다.
- 기오씨, 그 날 어쩜 하루만에 태도가 변했어요? 꿈에서 어떻게 나왔길래...
- 구름 위의 하얀 대리석 계단에 수애씨가 새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있었어요. '수애씨가 나에겐 여신이구나' 라고 생각했죠.
- 어머, 그런 말도 할 줄 알았어요?
- 모든 말과 행동은 마음가는대로 하는 스타일입니다.
- 처음 본 날과 너무 다르네요. 그 땐 살짝 실망했는데...
수애도 모르게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기오는 수애를 보며 씨익 웃어보이고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요즘 시대에 의자를 빼주는 남자는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다. 기오는 수애가 본 남자들 중에 가장 좋은 매너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은 몰랐던 기오의 모습이었다. 수애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이 남자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이번에는 받기위한 사랑이 아닌 주는 사랑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다. 분명 인비가 나쁜남자라며 기오를 소개해줬지만, 자신이 이 남자를 제어하여 매너좋은 남자로 만들었다는 확신에 빠진다.
- 수애씨, 내일 뭐해요?
- 내일... 왜요?
- 삼청동에 가지 않을래요? 제가 요즘 사진을 배우고있는데, 수애씨를 찍고싶어요.
- 후훗, 예쁘게 찍을 자신 있어요?
- 어떻게 찍은들 예쁘게 안 나오겠어요? 모델이 되어주세요.
- 알았어요. 모델료는 맛있는 저녁으로 결제하세요.
- 내일 결과물을 봐서 무얼 먹을지 달라지겠군요.
- 뭐라고요? 호호
- 그럼 일찍 들어갈까요? 내일을 위해...
- 그래요.
수애는 집에 가는 길에 인비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있었던 약속을 취소한다. 기오를 만난다는 말은 쏙 뺀다. 인비도 수애에게 기오에 대한 질문은 하지 못한다. 인비가 알기론 기오가 굉장한 바람둥이이기에, 어떻게든 언급을 기피하려 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약속장소에 도착한 수애가 두리번거리며 기오를 찾는다. 기오는 먼저 와있지 않았다. 대신 낯선 남자가 말을 건다.
- 혹시 강수애씨?
[곧 마지막편이 이어집니다. ]
글 오렌지노 / 그림 Hwai
다음편(마지막편) :
[자작연재상자/단편선] - 사랑받아야 사는 여자 - 오렌지노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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