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아아앙'
아이의 울음소리에 꿀잠이 달아났다. 저 소리만 아니면 조금만 더 잘 수 있었을텐데, 이 상황에서 잠을 계속 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만, 아이 울음소리? 대체 어떤 아이? 내가 왜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을 깨고 있는 것이지? 찡그린 눈을 살짝 뜬다. 처음 보는 아늑한 방이다. 방 안에는 나 뿐이고, 조금 열린 방문 틈새로 아이의 울음소리와, 아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여인의 달래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이 곳은 어디란 말인가?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본다. 분명 집 근처인데 처음 보는 허름한 골목에서 복권을 샀었다. 놀랍게도 1등에 당첨이 되었고, 복권 주인 할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 표정관리를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교복 입은 학생, 복권에 당첨된 모양인데 학생이 무슨 돈이 필요하겠나?"
나는 잔뜩 경계한 모습으로 주위를 살피며 여차하면 도망 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빼앗어 간다는 것이 아니니 마음 놓게나. 다만 이 할애비가 돈보다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것으로 대신해도 괜찮겠어?"
여전히 잔뜩 경계한 눈으로 그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그 복권은 원래 1등이 나올 수밖에 없어. 내가 취미로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서 없던 장소도 만들었지 껄껄... 정말로 소원을 하나 말해보게나."
"......"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속는 셈 치고 하나 말 해보게."
"......"
"밑져야 본전이야."
"네... 시간... 미래가 궁금해요."
"그렇지.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지. 미래가 궁금하다면, 자네가 행복한 가정을 이룬 때로 한 번 가보겠나?"
"네.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지금 집으로 가서 잠을 청하면, 미래에서 깨어날 걸세. 그리고 그 미래의 자네는 그 만큼의 시간을 지금의 자네의 삶으로 오게 되니 후에 기억할 수 있을 것이네."
이제 기억이 났다. 믿을 수 없는 그 일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한 가장의 아버지가 되어있다는 것인가? 어딘가에 핸드폰이 있을텐데... 찾았다. 밀어서 잠금해제? 미래의 핸드폰은 이렇게 바뀌는구나. 신기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이 몇년도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영문인지 방 안에 달력도 보이지 않는다. 슬슬 일어나 방을 나선다.
"아, 오빠 깼어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눈앞의 여인이 내 미래의 아내라는 말이지? 나 꽤 열심히 살게 되나보다.
"네. 아.... 으응..."
"아이구 우리 딸 다 흘렸네. 저기 물티슈 좀 가져다줘요."
두리번거리다 물티슈로 추정되는 것을 가져다 준다. 이런 건 써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정말 귀엽다. 내가 아이의 아빠가 된다니, 게다가 이렇게 천사같은 딸이라니. 감격스럽다.
"왜 그렇게 멀뚱멀뚱 보고있어요?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내가 웃어보이자, 한 참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앗, 그게 정말이었어? 오빠 지금 과거에서 온거야?"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질 않는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는 종종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학창시절 미래로 잠깐 와 보았는데 그 때 자신과 딸을 만났다는 것. 시시한 농담은 하지 말라고 했으나 교복 입은 어린 내가, 아내와 딸의 이름을 쓰고 하트를 그리는 사진을 보여주며 믿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합성 아니냐며 넘어갔으나 지금 보니 어색한 게 꼭 과거에서 온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 동안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좋은 말만 해 준 것인지, 정말 내가 미래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듣기만 해도 따뜻한 이야기들이었다.
행복감에 취해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온 뒤였다. 책상 위의 노트에는 처음 보는 내 글씨가 보였다. 그 곳에는 내가 앞으로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것 등 여러가지 내용이 있었다. 마지막 줄에는 꼭 잡아야 하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은 좀 전에 본 아내였다.
2012. 12. 6 이진호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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